그때 그 시절의 메옥수수죽과 옥수수빵 이야기
1. 그때 그 시절엔
우리들이 어렸던 시절에는 먹을 것이 많이 부족해 간식으로 먹을 것은 거의 제철에 나는 과일과 떡과 부침개 등이 있었지만 그것은 살림살이가 좀 나은 집들의 이야기고 보통 사람들은 거의 주식으로 먹는 밥 조차 잘 먹지 못하는 생활을 했다고 기억합니다.
요즘에 그런 이야기를 하면 이해가 되지 않을 법한 그 시절에는 가족의 수가 많은 가정이 일반적이여서 한집의 자녀 수는 5~11남매 까지 있어 대가족 체제였던 것이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식량은 부족하고 가족은 많고 헐벗은 생활이 이어져서 그때 아이들은 정말 힘들게 살았지만 그래도 정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의 생활은 모두를 이해하고 모두를 돌아보고 지켜 주던 것이 지금과 다른 점인 것 같습니다. 이때 옥수수는 여름철에는 생옥수수를 따서 삶아 먹고 여름에 단단하게 굳은 옥수수는 타개거나 빻아서 옥수수밥을 해 먹기도 했고 겨울에는 옥수수뻥튀기를 해 먹고 옥수수를 분쇄해서 옥수수엿이나 옥수수조청을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옥수수가루는 밀가루와 섞어서 막걸리를 넣고 빵반죽을 해서 넓적한 옥수수술빵을 만들어 여러 조각으로 썰어 형제나 자매들이 나누어 먹었는데 그 시절에 먹던 옥수수술빵은 우리 고향의 어린이들은 거의 다 먹고 자랐습니다. 특히, 쌀이 귀한 그 시절에는 밥은 늘 먹을 수 없는 것이라서 여름철에는 옥수수가 여물 무렵에 통옥수수를 따서 알갱이를 분리한 후 맷돌에 갈아 물직한 옥수수분쇄물를 삼베나 광목자루에 담아 걸러서 옥수수물을 끓여 옥수수묵이 만들어지면 구멍이 숭숭난 통나무틀에 넣고 위에서 나무로 된 누름판을 아래로 내려 눌러 옥수수올챙이 국수를 해 먹기도 했습니다. 먹을 것이 많이 부족했던 그 시절에는 옥수수잡곡밥이나 옥수수술빵 등을 많이 만들어 먹었습니다. 옥수수빵만들기는 그때 마다 필요할 만큼 발방아로 옥수수를 파쇄하고 물에 불려 맷돌에 갈아 말려 가루를 내기도 해 옥수수빵반죽 준비를 하는 집도 있고 방앗간에서 옥수수알갱이를 타개고 분쇄를 해서 옥수수가루가 되면 통밀가루나 흰밀가루를 섞어 막걸리나 술약을 넣고 빵반죽을 해서 큼지막한 옥수수술빵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먹고 싶은 것이 그 시절에 먹었던 추억 어린 먹거리여서 더욱 생각이 나는 것 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 아주 좋지 않은 시대에 태어나 자라서 먹는 것이 너무 부족했고 문화생활도 아주 열악 했기에 옥수수술빵 한 조각도 아주 소중했던 것이 였습니다. 형제나 자매들이 많다 보니 어디서 놀다가 얻어 먹는 옥수수빵 한 조각도 누나나 형들이 다 먹지 않고 남겨다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던 그런 정이 있던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특히, 위로 누나가 있는 집안의 아이들은 누나가 옥수수빵을 만들어 동생들에게 주기도 하고 이웃집 마당에서 놀다가 배가 고프면 요깃거리로 옥수수빵을 얻어 먹기도 했었습니다. 보통 가정에서는 모양은 잘 만들어 지지는 않았지만 노릇한 옥수수술빵은 집집 마다 자주 만들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 였다고 기억됩니다. 우리 고향에는 지금은 논이 많지만 그 시절에는 농업용수가 많이 부족해서 밭이 대부분이라 쌀이 정말 귀한 식재료였습니다. 옥수수빵은 빵반죽을 해서 무쇠솥에 나무채반이나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갈고 삼베 보자기나 광목 보자기를 펴 깔고 그 위에 옥수수빵반죽을 깔아 펴서 솥투껑을 닫고 장작불로 옥수수술빵을 쪄서 먹었습니다. 가족의 수가 많으니 옥수수빵은 큰 무쇠솥에 하나를 쪄 내면 한가족이 넉넉히 한끼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장작불을 때면서 옥수수술빵이 얼른 익을 때를 기다리던 동생들의 모습과 그 빵을 얼른 쪄 보시려는 어머님이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옥수수술빵은 막 쪄서 김이 무럭 무럭나는 것을 썰어서 나누어 한 입씩 물어 떼어 먹으면 그야말로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그 때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립기는 해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하긴 싫은 이유는 지금보다 그때는 너무 힘들고 너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옥수수가루를 건강을 위해 먹는 식재료가 되었고 맛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2. 그때 이야기
어린 아이들이 많은 국민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많았고 먹을 것이 부족해서 삼시세끼를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었는데 그 시절에는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도 식량이 넉넉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모든 가족이 다 일을 해도 먹을 식량을 충분히 생산하지 못한 것은 사람의 손으로 모든 일을 해야하니 생산성이 없었던 거 였으며 지금처럼 수리시설이 잘 되지 못해 농업용수가 많이 부족해 비가 오지 않으면 논에 벼를 심기 어려운 시절이라 농지가 있어도 충분한 식량을 자급자족하기가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 복구를 하면서 살아가야만 했던 그 시절에는 먹을 거리가 정말 절실했습니다. 특히, 강원도홍천지역에는 일부 논이 많은 지역을 제외한 농가에서는 아이들이 학교를 가면 도시락을 싸줄 수가 없는 집이 많던 시기였습니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인데 미국에서 원조를 받은 옥수수가루를 학교에서 나누어 주기도 하고 학교급식소에서 옥수수죽을 커다란 가마솥에 끓여 나무자루가 달린 양은국자로 한 가득 퍼서 양재기를 들고 선 어린이들에게 순서대로 옥수수죽을 담아 주던 시절이 있었는데 양재기에 옥수수죽을 받아 든 아이들은 해 맑은 웃음을 지으면서 나무의자로 가서 양은그릇에 담긴 옥수수죽을 미군스푼으로 퍼 먹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 오릅니다. 그것은 옥수수가루죽이 그만큼 맛이 좋았던 것 보다는 너무 배고파서 그걸 기다려야 했던 아이들이 바로 나였고 나의 형이나 누나 동생들이 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국민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옥수수가루죽도 먹고 옥수수빵도 나누어 주고 옥수수가루도 나누어 줘서 집에 가서 끓여 먹거나 빵으로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살림이 괜찮은 집 아이들은 그 혜택이 없어 우리를 부러워 하는 모습도 그 당시에는 볼수 있었습니다.
www.esinsun.co.kr e신선농장 010-6205-1255 010-2601-1255
댓글 없음:
댓글 쓰기